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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영혼에 대한 생각들...

'영원한 반석'

Lim-Ky 2026. 7. 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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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반석 이방인의 첫 문장을 빌려 쓰지만,

나는 실존주의의 대가 알베르 카뮈가 아니다.

 

어머니가 죽었다.

 

몸은 한 줌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것으로 끝이라면, 카뮈는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머니가 남긴 흔적—그 흔적이 내 영혼에 새긴 자국은, 불에 타지 않는 다는 것을. 재는 육신의 몫이지, 사랑의 몫이 아니다.

 

카뮈라면 여기서 멈췄을 것이다. 남는 것은 없다고, 인간은 결국 원자로 돌아가 때로는 먼 지가, 때로는 거름이 되어 흩어진다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머니를 그렇게 흩 어지게 둘 수 없다.

 

그 거부 자체가 답이었다.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흔적을 새긴 것—영혼—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나는 논증이 아니라 직관으로 먼저 알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어머니를 이 땅에 다시 세울 수 없다. 물을 수도, 마주 앉을 수도 없다. 어머니는 유한했다. 죽음 앞에서 아무 힘이 없었고, 병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나와 똑 같이 연약한 인간이었다.

유한한 인간은 유한한 인간을 끝끝내 붙들 수 없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 영혼이 영원하다는 사실이, 어머니를 신의 자리에 앉힐 이유는 되지 않는다. 다만—고통과 애통이 없는 영원한 곳에서, 영원을 주관하시는 그분(아버지)의 품에 안겼다는 그 한 문장이, 내 안에 아주 깊은 잔상으 로 남는다. 나는 그것으로 족할 줄 알아야 한다.

 

죽음이 가르쳐주는 것 중 하나는 이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목도할 때 본능적으로 영원한 것 을 갈망하게 되고, 결국 영원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향해 눈을 든다는 것.

 

이제 어머니를 이 땅에서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어머니와 내 영혼을 값 주고 사신 그분께는 —나는 영원히 의탁하고, 영원히 의지할 수 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이사 야 26:4)

 

카뮈의 이방인은 부조리 앞에서 멈춰 섰지만, 나는 왜 마음 주시는지 그 자리에서 다시 걷게 하신다.

 

어머니를 붙들 수 없게 된 그 손으로, 이제 영원한 반석을 붙든다.

어머니가 평생 붙들었던 그 반석을 나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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