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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영혼에 대한 생각들...

'눈'이 아니라 '인식'이 열렸을 때

Lim-Ky 2026. 1. 1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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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 데카르트

이 유명한 명제는
내가 생각했기 때문에 존재가 생겨났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하니 어느 순간 내가 만들어졌다는 말도 아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훨씬 단순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존재가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이 존재의 증거라는 뜻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굳이 행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행동은 언제나 생각 이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우리가 하는 이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질문에 대한 힌트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한복음 9장 25절)

맹인이었던 사람은 맹인이었을 시점에 예수의 이적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원리나 정체는 모른다.

그러나 단 하나는 분명히 안다고 말한다.

보지 못하던 내가, 지금은 보고 있다는 사실.


이 말은 이런 뜻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눈을 떠서 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보이게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인간은 인식의 능력을
스스로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다.
인식은 언제나 주어진 결과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이 끝내 알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창조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창조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낳을’ 뿐이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기능조차
인간이 스스로 발명한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아
사용하고 있을 뿐인 기능
이다.

그렇다면 이 기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질문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


더 나아가, 인간은 죽음을 만들지 않았다.

인간은 생과 사의 경계를
설계한 적도 없고,
그 시점을 결정한 적도 없다.

이 사실은 거꾸로,
인간 위에 생과 사를 주관하는
어떤 존재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의 삶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들어선다.

마치 영화 속 인물로 살아가다가
어느 날 처음으로
감독의 대본을 손에 쥐게 된 사람처럼.

이제 그는
우연히 움직이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한 채,
그 의도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주연이 된다.


생각한다는 것은
존재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는 사건
이다.

그리고 그 자각은
인간을 인간 너머의 질문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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