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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ky 삽질블로그
‘보여주면 믿겠다’의 함정 (믿음을 조건으로 만들지 않으신 선택) 본문

시험의 함정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도 살아남아 보라고 했다.
능력을 증명하라는 요구였다.
신이라면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시험에 응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고, 증명하지 않았으며,
단호하게 사탄을 물리치셨다.
이 장면은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예수님은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반드시 죽음이라는 경로를 선택해야 했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지금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이 직접 세상에 등장해
압도적인 능력을 보이신다면
사람들은 자연히 믿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믿지 않을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처럼,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와 증언한다 해도
사람은 듣지 않을 사람은 듣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은 자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비우지 못한 채,
외부의 강제적 증거에 의해 생겨난 믿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설득일 수는 있어도,
신뢰는 아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남는다.
예수님은 왜 병자를 고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며,
바다를 걷는 이적을 보이셨을까.
만약 능력으로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려 했다면,
이적 자체가 오히려 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 예수님은 ‘증명을 요구하는 이적’은 거부하시고,
‘사랑에서 흘러나온 이적’은 행하셨다.
오병이어는 사탄의 시험과는 다른 출발점을 가진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를 궁율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 아무도 기적을 요구하지 않았고
✔ 아무도 증명을 요청하지 않았고
✔ 아무도 조건을 걸지 않았다.
기적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였다.
)
그래서 다른 접근을 생각해본다.
예수님은
세상의 룰을 깨부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룰 안으로 들어오셨다.
사회와 문화, 예술과 종교,
인간이 살아가는 이 거대한 맥락 속으로
아무것도 무너뜨리지 않은 채 들어오셨다.
동일한 환경,
동일한 조건,
동일한 인간의 삶 속에서
단 하나, 영으로만 구별된 존재로 살아가셨다.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계시였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은
신임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 맥락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으신 결과였다.
큰 흐름은 그대로 두고,
인간의 운명만 바꾸셨다.
그래서 그분의 삶은
세상을 무너뜨리지 않았고(파괴),
사람의 마음만 흔들었다.
결국 이것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진정한 신의 모습,
그리고 진정한 크리스찬의 모습이란,
동일한 환경, 동일한 맥락 가운데서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과 생각과 행동을 사는 자다.
그때에야
복음은 소리 없이 스며든다.
if / else의 함정
돌을 떡으로 만들면 신이고,
돌을 떡으로 만들지 못하면 신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 질문 자체가
사탄이 판 함정이다.
신은
능력을 증명해야만 신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랑은 증명으로 강요되지 않고,
믿음은 조건문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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