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종교서적(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이어령지음)을 읽고 '욥기'를 묵상한 내용입니다.
욥기는 언제나 읽고, 생각하고, 들어도, 정말 오묘하고, 두렵고, 이해할 수 없지만, 욥기를 통해 인간적 관점으론 절대 볼 수 없는 절대적 '윤리'와 '가치'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하는 것 같습니다.
구조(위키백과 참고)
욥기는 산문체의 서두부와 종결부가 대화문을 에워싼 구조를 가진다.[1] 이중 산문체인 서두부와 종결부는 욥기가 처음 기록될 때 작성된 부분이라는데 이견이 없으며, 대화문은 세대를 거치며 전래된 내용이다. 특히 엘리후의 발언과 욥기 28장의 지혜시는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현대에는 욥기의 구조적 통일성에 더 주목하는 추세이다.[2]
3장 이하는 기원전 6세기에서 현실상 고난을 주인공 욥을 이용해 표현한다. 3장은 애가(哀歌)로서 생의 저주· 사망·허무를 향한 동경(독백)이며, 4장에서 27장은 세 친구간의 대담(對談)이고 제29장에서 제31장은 과거와 현재의 대비, 결백의 맹서로 내용이 되어 있으며, 제38장에서 제42장 제6절은 신과의 대화인데 이것이 줄거리이다. 그 발단은 생의 부조리의 문제로서 이유 없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생을 저주하고 세계의 파괴를 원하게 되며 사망을 동경하게 된다. 그 후에는 무상한 우정과 신을 향한 사랑의 좌절과 중보자(仲保者)를 요청하는 테마가 나타나서 신과의 대결로 향한다. 최후에 신은 창조자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승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욥기의 대략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 1~2장: 서두부
- 3~14장: 첫 번째 논쟁
- 15~21장: 두 번째 논쟁
- 22~27장: 세 번째 논쟁
- 28장: 지혜시[3]
- 29~31장: 욥의 독백
- 32~37장: 엘리후의 발언
- 38~42장 6절: 하나님의 발언과 욥의 대답
- 42장 7절~17절: 욥의 회복
묵상.
현세에서 일어나는 모든 삶의 문제를 인간 중심으로 풀이하면 어떤 해답도 얻을 수 없다.
의가 성립하지 않으며, 불의가 판치며 불공정과 공리적인 것이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우리는 설명 할 수 없다.(인간의 한계)
물론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로 인하여 세상의 질서가 이런식으로 불공정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치부하기엔 부족하다.(고난이 어디에서 오는가) 욥의 상황은 무고한자가 신에 의하여 시험을 받는 상황이고, 욥은 이 고난이 신으로 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욥의 시선에선 불합리할 수 밖에…어쩌면 신이 주신 고난을 받은 자는 누구보다도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더욱더 인간의 한계에 도달하도록, 그만큼 신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
왜 선한자가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렇게 신에게 잘못한 게 있는지,
인간세계에서 인간을 대표하여 욥은 신에게 자신의 탄생을 회의하고, 원망하고, 후회하며, 처절하고, 간곡하게 신에게 답을 구한다.
이에, 하나님은 욥을 직접 대면하시며 말씀하신다.
모든 창조물을 만든 창조자의 생각을 피조물인 네가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것.
어쩌면 욥이 신을 벗어 났을 때(=신에게 원망, 신이 없다는 절망, 인간한계를 느끼는 상황) 신에게 진정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부모님이 없어봐야 부모님의 소중함과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는 것과 비슷..)
욥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형식논리를 초월한 세계, 그곳에 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 났을 때 비로소 이해되는 지복의 경지(신의 경지)가 있다.
논리로만 증명되는 하나님은 인간화된 그리스 신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한 신 이상의 것을 알려면 일단 인간의 논리로, 이해관계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파괴해야하며,
그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그것이 진짜 하나님이고, 인간 이상의 하나님인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이해하면 신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야 그것이 하나님이고, 신이다.
물론 우리가 이해 가능하도록 우리를 만나주시기도하지만 적어도 욥의 사건에선 덜 해당되는 것 같다. 물론 답하실땐 직접 욥을 대면까지 해주심)
보상을 받지 않아도 옳기 때문에 해야 되는 것, 자신에게 이롭든 이롭지 않든 지켜야 되기 때문에 지키는 것(give & take 논리가 아닌) 그것이 '절대' 윤리..(이 논리대로 훗날 가장 무죄한 자(예수님)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그 수난의 극치를 대신 당하심)
착한 자가 남이 겪지 않을 불행과 수난을 겪었기 때문에, 욥은 남들이라면 절대로 알지 못한 '절대적 가치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사색 > 영혼에 대한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를 '말씀'을 먹어야 산다. (오병이어) (1) | 2023.11.22 |
---|---|
'침묵'의 두 세계 (1) | 2023.11.13 |
세상에서 딱 한 번만 일어난 일, 기적(십자가) (0) | 2023.11.05 |
양자역학 (자연 = 신 = 절대, 예측 가능성) (0) | 2023.10.29 |
늙어가는 것은, 신의 축복이다. (0) | 2023.06.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