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밤 7시에 서울역 2번 출구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놀랍게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약속이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오늘의 시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시간을 약속한 것이고 내가 오늘 서울역 2번 출구에 있지 않지만, 내일 서울역 2번 출구에 약속한 사람이 있을거란 사실을 보지 않고도 가지 않고도 그 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이룬 것인데, 이 약속이 성사될 수 있음은 내가 약속한자를 신뢰하고 믿기 때문에 가능하다. 길을 가다 처음 보는 낯선사람과 우리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신뢰하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지만 흔한 일상 속 '약속'에서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놀라운 '약속'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인류 전체,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확장한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죽음' 라는 시점(미래시간)에 우리는 이 땅이 아닌 곳, 영적세계(공간)에서 '그(신)'를 마주할 것이란 '약속'을 이미 받은 것이다. 이 약속을 믿고 사는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반드시 구별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약속을 인정하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감히 '진정한 믿음'에 한발짝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믿음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약속, 다시 말해 이 '믿음의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까? 언제까지 유효할까?
그것은 '죽음'이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그 날
'죽음'을 기점으로 믿음의 약속은 오차 없이 모두 이루어진다.
죽기 이전과 이후는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약속 할 수 있는 원리를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가 과연 과거를 가지고 약속한적이 있는가.
어제 밤 7시에, 서울역 2번출구에서 보자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약속이란 반드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서만 할 수 있다. 아니 정말 그렇다.
여기서 우리가 죽기전에 반드시 믿어야 할 이유를 모두 설명했다.
즉,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믿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사실 확인에 가깝다)
그래서 그랬던가,
부활한 예수의 손바닥 못자국에 손가락을 걸어보고, 옆구리 상흔에 손까지 넣어본 도마의 믿음은
사실확인에 가까운 것이라 믿음이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작은 믿음'인 것이다.
그것은 아직 도마가 모든 것(땅에서 표적을 보았지 영적세계에서 본 건 아님)을 보지 못했고 약속의 시간(죽음)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죽음 직전(약속의 시간)에 도저히 신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온전히 박힌 그(인간의 눈으로 봤을때 실망적으로 보이는 메시야)를 보고도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통해 결국 구원 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이 오기전 어떤 형태로든 간에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지 않은 모든 생명체는 믿음의 약속 가운데 영생의 희망이 있는 것이며, 죽고나서 믿는다는 말은 죽어도 믿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즉, 좁쌀만한 '믿음'이라도 자신이 그렇게 하기로 믿는다면 그 믿음의 고백은 그 자체로 증거가 되고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게(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증거로 죽음 이후에 '온전한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 ~ 3절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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